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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모리국수

장시간 차를 타서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포항에서의 첫 끼니로 는 얼큰한 모리국수가 적당할 듯싶었다. 모리국수는 구룡포에서 처음 만들어 먹은 것으로, 각종 신선한 해물과 국수를 넣어서 끓인 음식이다. 다양한 재료를 모디어(모두어) 끓였다 해서 ‘모리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평일인데도 식당 앞에는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늘어서 있다. 테이블이 4개밖에 없어 모르는 사람과의 합석은 필수다. 김치 하나와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양은 냄비에 담긴 국수가 등장했다. 표면을 가득 덮은 고춧가루를 풀고 한 국자 크게 뜨자 아귀와 홍합, 콩나물 등이국수와 뒤엉켜 올라온다. 시원한 국물 한 숟가락, 호로록 국수 한 젓가락에 실한 아귀 살도 베어 물었다. 낯선 모습이나 친숙 한 맛에 젓가락이 바삐 움직인다. 멀미에 울렁거리던 속도 바다를 품은 은은한 맛에 금세 편안해진다.

호미곶으로 향하다

배를 채웠으니 도시에서 아른거리던 바다를 보러 갈 차례. 포항의 상징과도 같은 호미곶으로 향했다.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는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이곳이 천하의 명당이라 했고, 육당 최남선은 호미곶에서 해뜨는 광경을 ‘조선 10경’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매년 1월 1일이면 일출 행사로 떠들썩하지만, 평일 한낮은 축제가 끝난 다음 날처럼 고요했다. 인류가 화합하고, 더불어 살자는 의미를 담은 ‘상생의손’에는 손가락마다 갈매기들이 앉아 낮잠을 청하고 있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은 등줄기를 훅훅 볶지만 철써덕거리는 파도 소리에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바다를 더 가까이서 느끼고자 해안둘레길로 향했다.

호미반도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길이 25km의 둘레길은 청림에서 시작해 해맞이광장에서 끝나는 4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바다 위를 지나는 데크길 경관이 수려하기로 소문난 2코스 선바우길을 걷기로 했다. 파도에 둥글게 깎인 암석을 곁에 두고 바다 위를 지나며 아주 오랜만에 걷기의 환희를 실감했다. 일상에서 기계적으로 도심을 걷던 날과 달리 눈길 닿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이 순간만큼은 내 발로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고 싶은 의지마저 샘솟는다.

다음 포항 여행에서는 둘레길을 오롯이 걸어보고자 마음먹었다.

포항물회국수

저녁에는 포항의 또 다른 명물, 물회국수를 맛보기 위해 영일대해수욕장 근처 맛집을 찾았다. 여름에 입맛이 뚝떨어지면 생각나는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물회가 포항이 원조인지 이번에 알게 됐다. 선상에서 회를 잘라 넣고, 양념과 야채, 물을 섞어 먹던 어부들의 음식이 지역 주민에게 알려지면서 정착했다. 애초 한 그릇에 모든 재료와 육수가 담겨 나오는 다른 지역과 달리 포항 물회는 육수를 뺀 상태에서 상에 오른다. 오이, 무 등 채소와 생선회, 양념장을 비빔밥 비비듯이 뒤섞은 다음, 따로 나온 육수를 조금씩 붓는다. 잔뜩 뿌린 깨소금과 생선 살의 고소함,가볍고 상큼한 육수가 한데 어우러져 없던 입맛도 되살린다. 함께 나온 국수 소면을 말았다. 하얀 국수 사리는 흰도화지처럼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렸다. 국수를 다 먹을 무렵 입맛이 돌아 남은 국물에 밥도 말았다. 포항에서는물회를 시키면 국수 사리, 밥 한 공기, 작은 뚝배기에 담긴 탕까지 같이 나오니 마음껏 한 상을 즐길 수 있다.

해가 저물었는데도 영일대해수욕장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지 않는다. 해안선 너머 포스코 공장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뒤이어 2013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수상한 국내 최초의 해상 누각이 형형색색으로 물든다. 뒤질세라 휘영청 밝은 달까지 서로 자기를 봐달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 빛나는 밤이다. 여름철에는 저녁 8시 이후 불이 들어온다.

특별하다, 송도해수욕장

송도해수욕장을 바라보는 곳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이 바로 송도송림테마거리인데, 아침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감각적인 조형물을 지나 숲에 들어서자 깜짝 놀랄만만큼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소나무 숲을 지나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바닥에 두툼하게 쌓인 솔잎 덕에 걷기에 무리가 없다. 서둘러 나온다고 했지만, 부지런한 주민들이 먼저 숲에서 아침 공기를 즐기고있다. 매일 푸르고 상쾌한 공기에 둘러싸여 산책할 수 있는 이지역 사람들의 아침이 부러워졌다.

죽도시장 칼제비

포항 국수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메뉴는 죽도시장에서 유명한 칼제비다. 동해안 최대의 상설 시장인 죽도시장은 횟집만도 200곳이 넘지만, 수제비 골목에서 파는 수제비와 칼국수를 섞은 칼제비 역시 지역 주민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포항에 서 만난 국수 가운데 가장 평범한 메뉴기에 솔직히 큰 기대를 지는 않았다. 국물 한 모금에 한 번, 뒤이어 집어 먹은 수제
비 조각에 두 번 놀랐다. 진한 국물은 달달한 맛이 나고, 매일 접 반죽해 주문 즉시 삶아 내는 면과 뚝뚝 뜯어 익힌 수제비는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다. 면은 목넘김이 좋아 부드럽고, 중간 중간에는 수제비는 쫄깃한 식감이 재밌다. 물론 2가지 면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점이 제일 좋았다. 멀리서 포항의 국수를 맛보러 왔다니 재차 맛있느냐고 확인하며 포실한 감자 조각을 더 얹어주던 주인 할머니의 인심 덕분에 더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제일국수공장를 아시나요?

포항에서 나고 자란 국수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건 바로 해풍 국수일 것이다. 1971년 장사를 시작해 50여 년 동안 바람에 말린 국수로 사랑받는 ‘제일국수공장’을 찾았다. 구룡포 시장에 위치한 곳으로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다. 잠깐 머무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와 국수를 샀다. 평생 면을 만들었을 주인 할머니의 손길이 몹시 분주하다. 밀가루와 물, 소금만으로 뽑는 평범한 국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탄생한 쫄깃한 식감과 독특한 맛 덕분에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할머니를 도와 이제는 아들이 국수를 말린다. 방문한 날은 흐리고, 빗방울도 떨어져 안타깝게도 햇볕에 말리는 국수를 볼수 없어 새로 지은 공장에 갔다. 구룡포 시장과 달리 세월을 받아들인 공장의 모습이다. 국수를 널 때 쓰던 나무 막대기는 쇠 막대기로 변했고, 투박하게 국수를 싸던 신문지는 말끔한 비닐 포장지로 대체됐다. 시대가 변해 더 편리한 방법을 몇 가지 취했을 뿐 반죽부터 꼬박 이틀 넘게 국수를 말려 재단하고 포장하는 손길과 정성은 변함이 없다.

포항 오어사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기 아쉬워 포항을 떠나기 전 풍광 좋기로 소문난 오어사에 들렀다. 운제산 아래 자리 잡은 오어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로 큰 저수지 오어지를 앞에 두고 사계절 내내 고풍스러움을 뽐낸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으로 개천에 죽어 있는 고기를 살리는 시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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