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여행, 헤이리예술마을, 한국근현대사박물관, 잇츠콜라박물관, 뮤직스페이스카메라타

어릴 적에는 모으는 게 참 많았다. 당시 유행하던 캐릭터가 그려진 알록달록한 학 종이, 등하굣길 주변에 있는 영화관에 매일 들러 포스터도 챙겼다. 하나씩 파일철에 정리해둔 학 종이는 여전히 예쁘고, 두툼한 영화 포스터 뭉치를 들춰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일은 여전히 재미있다.


문득 20세가 넘으면서 모으고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유행은 빠르고, 관심이 유지되는 기간은 짧아 진득하게 하나에만 몰두하기에는 화려하고 바쁜 세상이니까. 파주에 다녀와 새삼 뭔가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취향을 수집한 결과는 아름다웠고, 치열한 삶의 증거처럼 보였다.

헤이리예술마을

시원하게 뻗은 자유로를 달려 서울을 벗어난다. 경기도 파주는 카페도, 식당도, 도서관도 모두 크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어딜 가도 한가하게 느껴진다. 헤이리예술마을은 여러 분야 예술인의 거주 공간 및 문화 공간으로 조성했다. 살림집을 비롯해서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이 포진해 방문객에게는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테마파크와도 같은 곳.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헤이리예술마을을 검색하면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후기가 정말 많다. 사실 옛 마을을 재현한 동네나 관광지에 여러 번 가본 터라 얼마나 다를까 싶어 기대 없이 방문했는데, 감상평부터 말하자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알찼고 부모님과 함께 가면 더 좋을 곳이다. 돌계단, 전봇대와 기와지붕 같은 건물 외관은 물론 좁은 골목과 인쇄소, 한복점, 식당까지 여러 가게가 밀집한 거리가 제법 실감 난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 로 냄새조차 이전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지하 1층은 1960년대 전후 동네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성냥, 깡통, 그릇 같은 작은 소품이 빼곡해 어떻게 이 많은 물건을 다 모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국근현대사박물관 최봉권 관장은 누군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오래된 유물을 20대 초반부터 30여 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수집했다. 2010년 헤이리에 문을 연 이곳에는 장난감, 시계, 전단과 반공 포스터 심지어 껌 종이까지 자그마치 7만여 점에 달하는 온갖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정성, 열정이 집약된 곳이다.

잇츠콜라박물관

잇츠콜라박물관 역시 눈을 반짝일 만큼 재밌는 물건이 많다. 세계 각국에서 생산한 코카콜라부터 해외 유명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특별 에디션, 브랜드를 상징하는 흰곰 인형과 컵 등 코카콜라와 관련한 모든 음료와 장식·생활 용품이 가득하다. 진열장에서 2021년 출시한 국내 6대 도시가 들어간 디자인의 콜라를 발견했다. 수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지하는 박물관, 1층은 기프트 숍으로 운영한다. 잇츠콜라박물관은 입장권을 사면 콜라 한 캔을 마실 수 있다. 콜라 캔과 병, 온통 빨간 소품을 보고 나면 분명 콜라가 마시고 싶어진다. 콜라박물관을 둘러보고 마시는 제로콜라 한 캔이 더없이 특별하다.

뮤직스페이스카메라타

헤이리예술마을에서 20여 년째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뮤직스페이스카메라타는 음악 감상실이다. 스피커를 향해 좌석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거대한 스피커는 모두 1920~30년대에 만든 빈티지 모델이다. 디지털 음원이 재현할 수 없는 음반의 섬세한 소리와 감동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입장료를 내고 원하는 자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면 된다. 책을 읽거나 음료를 마시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어도 된다. 오전 11시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했는데 이미 여러 번 방문해 이 공간이 익숙해 보이는 부부만 있었다. 낯선 공간에서 두리번거리는데 쇼팽의 ‘녹턴 1번’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공간에 나지막이 흐르는 선명한 피아노 소리에 찌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이곳은 1970~80년대 아나운서 겸 라디오 DJ로 활약한 방송인 황인용이 수집한 오디오와 음반으로 꾸린 공간이다. 주말에는 클래식 공연과 독서 모임도 활발하게진행한다. 파주의 떠오르는 음악감상실로 콩치노콩크리트도 있다.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 오롯한 감상 전용 홀로, 빈티지 스피커를 기반으로 한 음향 시설과 대표가모은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음반 1만여 장이 자랑거리다.

파주 지혜의 숲

파주 하면 단연 출판단지를 빼놓을 수 없다. 크고 작은 출판사 사이에 크고 작은 북카페도 여럿이다. 지혜의 숲은 그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복합 공간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짜넣은 서가에 책이 빼곡하다. 학자, 지식인, 여러 출판사에서 기증한 책이 한데 모여 있다. 평일 오후, 널찍한 서재에서 책에 둘러싸여 공부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이도 많았다. 작은 갤러리에서는 전시가 열리고, 여러 출판사의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문발리헌책방골목블루박스

문발리헌책방골목블루박스는 지혜의 숲과 가깝다. 소설, 예술, 인문학 등 주제별로 다양한 중고 서적을 모아놓은 헌책방이다. 들어서자마자 서가와 벤치, 책장 모두 결과 모양이 살아 있는 나무로 만든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책장마다 귀여운 지붕이 달려 있고, 아담한 복층으로 올라가는 삐거덕 소리가 나는 나무 계단도 숲속 놀이터에 온 것처럼 정겹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책을 읽거나 개인 작업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미메시스아트 뮤지엄

이번 파주 여행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은 미메시스아트 뮤지엄이다.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매끈한 뮤지엄은 출판단지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날이 좋아서인지 파주 곳곳에서 촬영하는 이를 자주 마주쳤다. 지혜의 숲에서는 서가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는 뮤지엄 외관을 열정적으로 담아내는 사진가를 보았다. 이 사진가는 전시를 보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도 비슷한 자리에서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차가운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유려한 곡선 사이에 드리운 그림자의 모습이 꽤 아름답다.

인상파 화가 모네가 연못에서 해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담아낸 것처럼 저 사진가도 계속 달라지는 그림자를 좇는 걸까?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세계적인 건축가알바루 시자가 설계했다. 다양한 크기의 전시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로 이뤄진 구조로 전체적 모양은 펼쳐놓은 책 같기도 하고, 웅크린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1층은 아담한 정원이 보이는 카페, 2, 3층은 전시실이다. 내부 역시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전시를 감상할수 있다. 인공조명을 최소화하고 자연광 아래 걸려 있는 작품을 감상하는 여유가 소중했다. 서울 곳곳의 유명한 전시회에 가보면 인파에 몰려 줄을 서서 그림을 감상하고는 했는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는 오롯이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6월 11일까지 전시 이 열린다.

젊은 작가의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예술 세계를 조명해온 여섯 번째 기획전으로, 백요섭, 윤석원, 서원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근교의 재미

날이 좋은 주말 홍대나 성수 등 핫한 동네의 카페에서 빈자리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 일이다. 자꾸만 붐비는 서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건 파주의 지혜의 숲, 미술관, 그리고 카페 모두 서울과 다른 한가로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파주에는 유명한 대형카페가 여럿이다. 아이돌 뮤직비디오 세트장 같은 화려한 외관이 돋보이는 말똥도넛 디저트타운은 유명한 도넛 가게다. 내부 인테리어만큼 도넛 역시 알록달록해 사진찍기 좋다는 평. 더티트렁크는 공장 스타일 카페로 2층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포토존이 압권이다. 높은 천장 아래 동그란 창문과 철제 구조물은 색다른 감성을 자아낸다. 커다란 카페에서는 브런치부터 식사, 음료,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다. 이곳 말고도 온실 카페 문지리535, 브런치 카페 브릭루즈 등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는 카페가 여럿이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파주의 대형 카페로 드라이브를 떠나자.

-염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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