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외도 여행, 보타니아, 흑진주몽돌해수욕장, 바람의 언덕

휴가철이 끝나가는 거제는 무척 한산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며,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숨 막히는 도심의 열기 대신 바다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 덕분에 도 마음도 더없이 상쾌했다. 관광지가 몰려 있는 거제도 남쪽을 중심으로 둘러보았는데 도로를 따라 바다를닮은 푸른 수국이 만개해 있었다. 거제가 수국축제가 열릴 만큼 수국으로 유명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외도 보타니아

외도 보타니아는 제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일순위로꼽는 행선지다. 이창호·최호숙 부부가 1969년 섬을 구매한 이후 땀과 눈물로 가꿔 1995년 해상식물공원으로 장했고, 지금까지 관람객 2,000만여 명이 다녀갔다. 객은 보통 해금강과 외도 보타니아를 함께 둘러볼수 있는 유람선 코스를 선택한다. 총 3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먼저 배를 타고 해금강을 둘러본 다음, 외도에 상륙해 2시간 동안 자유 관람 하는 일정이다.

입담 좋은 선장님이 각종 안전 사항을 꼼꼼하게 숙지시킨 다음 유람선이 출발했다. 해금강으로 향하는 동안 갈매기들이 배를 쫓아온다. 새우깡을 사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도 갈매기를 향해 새우깡을 열심히 던지는 부녀 곁에 자리 잡아서 어떻게 던져도 척척 받아먹는 갈매기의 공중 쇼를 관람할 수 있었다. 해금강은 ‘바다 위의 금강산’이라는 뜻으로 사시사철 아름다운 금강산처럼 수려한 암벽과 바위, 절벽이 즐비한 곳이다.

이빨 빠진 사자의 옆모습을 닮은 사자바위, 4개의 절벽 사이 십(十)자 모양으로 생긴 십자동굴, 위태롭게 바다에 서 있는 촛대바위 등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이 빚은 멋진 조형 작품이 이어진다. 감탄을 자아내는 바다 위 미술관을 지나 외도에 상륙했다. 어느 배를 타고 오든 2시간 동안 관람할 수 있고, 섬에서는 숙식이나 차량 이동이 불가능하다. 오롯이 두 발로 섬을 누벼야 한다. 도시에서는 이미 꽃이 진 지 오래지만 거대한 알로에, 키 큰 야자나무를 지나쳐 마주한 외도 보타니아의 대표 장소 비너스 가든에는 알록달록 화려한 꽃이 가득하다. 외도에는 꽃과 나무 3,000여 종이 식재되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는 언제든 찾아도 좋다는 뜻.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근사한 조각상과 분수, 이국적인 식물 너머로 보이는 바다 경관에 마치 지중해 어느 섬에 놀러 온 기분이다.

이곳저곳을 누비고 찾은 해상식물원에서는 시들고, 죽어가는 식물 하나 보지 못했다. 오랜 세월 얼마나 정성을 다해 관리하고 가꿨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걸음마다 발길을 붙잡는 풍경에 2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바다가 있어 누리는 오감 만족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제도 해변은 모래 대신 반질반질한 몽돌이 해변을 채운다.

흑진주몽돌해수욕장

학동흑진주몽돌해수욕장은 국내 몽돌해수욕장 중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모난 곳 없이 까맣고 동글동글한 몽돌은 정말 ‘흑진주’를 닮은 듯 참 예쁘다.

몽돌해수욕장에 갔다면 파도가 치는 소리를 꼭 들어보길 바란다. 파도가 치고, 다시 밀려가면서 몽돌이 구르는 ‘사르륵 사르륵’ 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며 속삭인다. 이 소리는 ‘우리나라 자연의 소리 100선’에 선정됐을 정도다. 자꾸만 듣고 싶은 천연 ASMR을 휴대폰으로 녹음해왔다. ‘예쁜 돌멩이 하나쯤 가져가도 괜찮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몽돌을 챙기는 일은 없어야겠다. 과거에 비해 몽돌 유출이 심해져 해변마다 몽돌을 가져가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거제파노라마 케이블카

학동흑진주몽돌해수욕장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거제 파노라마 케이블카는 지난 3월에 문을 연 신상 관광지다. 학동고개와 노자산 정상 1.56km를 연결하는 코스로 편도 약 10분이 소요된다. 날이 흐려서인지 케이블카 안에서 보이는 바다도 어둡고 우중충해 별 기대감 없이 올랐다. 그런데 정상에 꾸며놓은 전망대에 서보니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먹구름과 안개가 드리운 하늘과 파란 바다의 경계에 크고 작은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야말로 ‘다도해’를 실감하게 하는 절경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벌인 한산도, 봉우리 사이로 달이 떠오른다는 산달도, 통영의 추봉도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시원하게 펼쳐진 다도해 풍경 뒤로 자꾸만 먹구름이 몰려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오픈한 신상 관광지가 근처에 또 있다. 바로 다대리와 다포항을 잇는 다포항 후릿개다리다. 평화롭고 조용한 포구에 빨간색 해상 데크 길이 눈에 띈다. 분주한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쪽빛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은 차로 해안도로를 달릴 때와는 분명 다르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 사이로 바다내음이 느껴져 오감이 살아난 기분이다.

바람의 언덕

오래전부터 TV 드라마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해 익숙한 바람의 언덕은 바다를 마주한 언덕 위에 풍차가 돌아가는 이국적 경관을 자랑한다. 이름처럼 바다에서 끊임없이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생각보다 크지 않아 언덕과 풍차 주변을 둘러보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거제를 떠날 시간이 가까워서야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마침내 해가 얼굴을 내민다. 뜨거운 태양을 반기며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매미성이다. 신기한 일과 사람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애청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곳으로,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 씨가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홀로 쌓아 올린 성벽이다. 시민한 사람이 만든 성에 최근 몇 년 사이 엄청난 관광객이 방문하자 주차장은 물론 주변에 카페, 기념품점까지 생겼다.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지대에 매미성이 자리한다.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설계도도 없이 혼자서 지었다는 사실에 한 번, 신비로운 분위기에 한번 더 감탄한다. 구불구불한 성곽 위쪽에서 바다와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프랑스 남부 혹은 이탈리아 해안 마을이 연상될 만큼 아름답고 이색적이다.

산맥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섬들이 펼쳐진 케이블카 전망대도, 해금강과 바람의 언덕도 날이 좋았다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행을 하다 보니 다시 거제에 와야 할 이유가생겼다. 김영하 작가의 이탈리아 여행기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해줄 수가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기분, 몽돌이 굴러가는 소리, 한 사람의 노고가 깃든 바다앞 성벽을 바라보며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지만 날씨 핑계를대고, 말을 고르느라 어렵기만 하다. 소중한 이에게 거제까지 가는 길이멀게 느껴져도 올해는 꼭 가보라고 권하는 일이 이미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감동을 공유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는다.

복지경제신문 -김희원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