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여행기

경북 안동은 매력과 멋이 넘치는 특별한 곳입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오롯이 유지되는 정신문화의 수도이자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를 배출한 고장인데요. 도산서원을 찾으면 조선의 대표적 유학자 퇴계 이황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이육사문학관이 자리해 우리 민족의 슬픔과 광복을 염원한 육사의 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안동의 대표 명소인 하회마을은 성리학자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선생을 배출한 곳으로,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할 만큼 역사적 사료로 가득합니다.

낙동강이 태극 문양으로 감싸 돌고 흐르는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터를 잡아 600여 년간 대를 이어온 곳으로, 하회마을 서북쪽에 병풍처럼 드리운 해발 64m 절벽의 부용대 정상에 서면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자동차로 20분 남짓한 곳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유교 건축물의 백미로 꼽힙니다.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병산서원은 사계절 언제든 찾아도 후회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전통 역할극 별신굿놀이에 사용한 하회탈이 유래한 고장이며, 천연 닥나무를 원료로 전통 방식으로 제조한 안동풍산한지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습니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주옥같은 동화 100편을 집필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도 이곳 안동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기름진 토양과 맑은 물은 대대로 맛 좋은 술을 빚어내고, 풍요한 먹거리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흥미로운 역사와 사람이 있고, 고유의 문화와 빼어난 자연이 어우러진 풍류의 고장, 안동에 머무는 내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참으로 풍요로웠습니다.

안동은 민화 교육기관의 거점이기도 하는데요. 비교적 자유분방한 서민의 그림으로 자리 잡은 민화 연구 단체와 자그마한 교육기관도 곳곳에 자리한다. 민화뿐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예술가를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 갤러리 투어를 하기로 했습니다. 지도를 펼쳐놓으니 크고 작은 갤러리와 여러 공방이 눈에 띕니다.

송강미술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지난해 개관한 송강미술관입니다. 1995년 폐교한 초등학교 부지에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새하얀 미술관 건물 앞 비석에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고,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꿈을 드리고 싶어서 마련한 공간”이라고 새긴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건설사 대표이사인 정해룡 이사장과 김명자 시인 부부가 설립한 송강미술관에서는 전통문화부터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니 하회탈 부조가 먼저 반긴다. 주지, 각시, 양반, 부네, 할미탈 등 11개 탈을 만나고, 중앙홀로 들어서니 새 모양의 웅장한 조형물이 눈길을 끕니다.

정의지 작가의 작품 ‘Querencia(안식처)-삼족오’다. 전시실 3곳에서는 최형길, 강찬모, 강기훈, 구자승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궁금한 그림은 옆에 있는 QR코드로 접속해 해설을 확인하며 감상을 마쳤다. 떡살전시관도 있어 명절에 만들어 먹던 다양한 떡 문양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옆에는 안동문학관이 자리합니다. 안동에서 태어났거나 인연이 있는 작가의 책을 모아놓은 곳인데요. 예향의 고장답게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이 진열돼 있는데 자유롭게 책을 골라 읽을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사찰 봉정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갤러리 나모에서는 민화연구회 회원의 그림을 전시한 <선물 같은 이야기>가 열리고 있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매월 다른 전시를 개최해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선물 같은 공간입니다. 그림을 감상하고 갤러리 옆 카페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다시금 만끽했습니다.

폴모스트는 안동의 핫한 갤러리 카페입니다. 오래된 모텔을리노베이션한 이곳은 ‘지역과의 상생’ 프로젝트로 지역 예술가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한다. 공간이 부족한 예술 가게에게는 기회를 주고, 카페를 찾은 이에게는 예술 감성을 자극하는 오작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담소를 나누며 향긋한 커피를 마실수 있으니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세동 벽화마을

안동에는 마을 전체가 캔버스가 되어 발걸음마다 즐거 움을 주는 마을도 있습니다. 신세동벽화마을은 옹기종기 집이 모여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지만, 2009년 미술 프로젝트시행해 관광 명소로 재탄생한 곳입니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미래의 김홍도도 만나고 팝아트의 거장 리히텐슈타인을 꿈꾸는 예술가의 솜씨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낮은 담벼락마다 달토끼, 어린 왕자, 스파이더맨, 연인 등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그림이 가득하다. ‘사랑하길’, ‘니가오길’ 같은 테마로 명명한 골목에는 발길을 멈춰 몇 번이고 되새기게 하는 감성 문구도 많다. 마을 정상에 오르면 안동 시내가 한눈에 담길 만큼 전망이 좋습니다.

예끼마을 벽화

‘예술의 끼가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명을 붙인 예끼마을 벽화도 인상적입니다. 젊은이가 하나둘 떠나가며 생기를 잃던 마을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벽화와 바닥화를 그려 넣고, 빈 건물에 지역 작가의 작품을 건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10분 남짓이면 한 바퀴 돌아보기 충분한 이곳은 마을 전체가 노천 미술관이자 포토 스폿으로 통합니다. 특히 이곳에서 안동호반자연휴양림까지 연결된 길이 1km의 선성수상길은 물 위에 놓은 그림 같은 길로 유명합니다. 고즈넉한 안동호의 풍광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다 보면 온갖 시름을 다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월영교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엔 별다른 고민 없이 월영교를 찾았습니다. 안동호에 놓인 길이 387m의 월영교는 안동에 살던 한 부부의 사연을 간직한 나무다리입니다. 지아비를 잃고 아픈 마음을 구구절절 써 내려간 편지와 아픈 남편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카락을 꼬아 만든 미투리가 함께 발견되면서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며 미투리 모양으로 설계한 월영교는 낮에 봐도 운치 있지만, 야경이 아르름다워 사랑을 속삭이며 저 녁 산책을 즐기기 좋습니다.

오랜 역사와 문화,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안동에서의 여정을 그림으로 완성하면 인생 작품이 될 듯 싶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밑그림을 그리고 다채로운 빛깔로 표현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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