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여행, 아침고요 수목원, 춘천 경강역

가평레일바이크

떠나자 가평으로

싫은 일에는 한없이 뭉그적거리는데, 놀러 갈 때만큼은 게으른 법이 없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가평 갈채비를 했습니다. 빵과 간식을 포장하고 물과 커피도 챙겼구요. 가방만 챙겼는데도 벌써 흥이 절로 납니다. 다 커서도 놀기만좋아해 큰일입니다.

아침고요 수목원

아침고요수목원으로 향했습니다. 1996년 문을 열었으니 20 년을 훌쩍 넘어 30년을 바라보는 원예수목원입니다. 오래된 만큼 수도권 거주자라면 데이트로, 소풍으로 한 번 정도는 가봤을 법한 명소입니다. 나뿐 아니라 지인도 10여 년 전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데이트한 기억이 난답니다. 2016년 한 통신사가 조사한 자동차 내비게이션 목적지 검색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니 더 말해 무엇할까요.

5월 기준 아침고요수목원은 그야말로 꽃대궐이었습니다. 땅부터 하늘까지 꽃이 안 보이는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국 정원의 특성을 살린 산책로의 굴곡과 절묘한 식물 배치가 돋보입니다. 흰 수선화는 청록색 침엽수림을 청량하게 돋보여주고, 흰 자작나무 군락은 노란 튤립을 더 또렷하게 빛을내고 있습니다.

꽃송이가 어찌나 탐스러운지 조화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물론 가까이 다가가면 어김없이 생화입니다. 한날한시에 심었을 텐데 크기도 모양도 잎의 벌어짐도 다 다릅니다. 꽃잎 대신 연둣빛 어린 잎사귀가 바람결에 팔랑이리라. 튤립과 라일락, 개나리, 수선화는 지금이나 나중이나 형형색색 아름다울 것이고, 미선나무와 조팝나무는 더 영롱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4월이든 5월이든, 가는 그날이 가장 아름다운 날일 것이라고 주문을 걸어봅니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경기도잣향기푸른숲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거리인데요. 수령이 80년 넘은 잣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입니다. 가늘고 긴 잣나무는 입구부터 가히 압도적인 자태를 뽐냅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라, 사람 키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입니다. 촉촉한 안개가 기둥마다 걸려 있어 신비롭기 까지 합니다. 명상이라도 해야 할 법한 분위기인데요. 제법 긴 숲길에서 2시간을 온전히 보냈습니다. 미리 챙긴 간식과 커피가 있어 다행인 하루 였습니다. 숲을 빠져나올 즈음 이곳이 첫 일정이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감상이 듭니다. 싱그러운 숲내음도 잘 닦인 산책로도 좋았지만, 안개가 빠르게 흩어지면서 분위기가 함께 증발된 게 못내 아쉬운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맛있는 가평 잣 요리

어릴 적 소풍을 가면 싫어하던 음식도 이상하게 맛있었습니다. 케찹이 대표적인데요. 평소 시큼함이 싫어 냄새만 맡아도 미간을 찌푸렸건만, 소풍날만큼은 케첩 넣은 오므라이스를 게 눈 감추듯 먹곤 했습니다.

가평 명물 잣 요리 앞에서 그 시절 그 변덕이 새삼 발현되었습니다. 집에서는 잣을 잘 즐길 일도 없고 먹을 기회도 굳이 피했지만, 가평에서만큼은 기꺼이 푸짐하게 즐겼습니다. 잣두부 정식을 주문하니 전골과 보쌈, 맑은 순두부, 갖가지 반찬이 상에 올라왔습니다. 두부가 일단 고소하게 씹히고 잣이 색다른 풍미를 더하더니, 잣과 두부 모두 모난 데 없이 부드럽게 어우러졌습니다. 특유의 알싸하고 느끼하며 고소한 맛은 이성적으로 평가하기 참 어렵습니다. ‘좋다’ 혹은 ‘싫다’로 나누기도 애매한데요. 그저 그릇을 말끔히 비우기까지 10분이면 충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평 잣고을 광장

가평의 잣요리로는 잣두부 못지않게 잣국수도 손꼽힌다. 잣두부든 잣국수든, 잣 요리 전문점이라면 대체로 햇잣을 입구에 진열해두고 판매합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가평의 번화가로 향했습니다. 잣고을 광장입니다. 광장 주변으로는 레일파크, 음악역1939, 전통시장이 자리합니다. 광장에서는 매월 끝자리가 5, 0인 날마다 오일장이 열려 활기를 더합니다. 다만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별달리 즐길 거리가 없는게 아쉽습니다. 광장 한쪽에 늘어선 푸드 트럭도 주말과 장날에만 문을 열고, 평일에는 대체로 꼭 닫습니다.

춘천 경강역, 춘천 자라섬

광장 옆 레일파크에서는 매시 정각에 레일바이크가 출발합니다. 춘천 경강까지 갔다가 잠시 휴식한 뒤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레일바이크는 반자동식이라 페달을 몇 번만 굴리고 나면 모터의 힘으로 알아서 나아갑니다. 이때 속도 조절이 관건. 브레이크를 잡으면 모터가 멈추는데, 다시 속도를 내기까지 허벅지에 적잖이 힘이 들어갑니다. 철길은 철교 너머 개나리 골목과 벚꽃 터널, 연둣빛 느티나무길로 이어지다 경강역에서 끊깁니다. 페달을 굴릴 때는 몰랐지만 흔들림이 제법 셌나 봅니다. 레일바이크에서 내리니 출렁다리 혹은 트램펄린에서 막 내린 듯 땅이 울렁거립니다. 다리를 힘껏 털며 스트레칭을 해 봅니다.

강경역은 옛 기차역의 외관을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외관이 말끔해 내부도 그렇겠거니 예상했는데, 온통 하트와 이름으로 빼곡히 도배돼 있습니다. 빈 벽에 이름을 새기고 돌밭 옆에 돌탑을 쌓고…. 흔적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일까요.

실없는 생각과 함께 짧은 휴식 시간을 흘려보내고, 다시 페달에 발을 얹습니다. 가평으로 돌아가며 꽃나무 사이로 봄볕을 함빡 맞습니다. 레일파크에서는 자라섬까지도 금방 갈 수 있겠습니다. 걸어서 10분이면 자라섬 입구에 다다르고, 다시 15분쯤 더 걸으면 섬 안쪽 깊숙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라섬은 가평에서 가장 유명한 캠핑&피크닉 성지로 꼽힙니다. 너른 정원에서 반나절은 느긋하게 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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